(원문링크)
- 다른 얼굴로 찾아온 국제관계·부동산·고용 위험요소들
- 모든 문제 풀려다 답안지 옮겨 적지 못해 시험 망칠 수도
6개월 전 바로 이 지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위험요소가 무엇일지 논했다. 당시 필자는 한미관계, 부동산 문제, 고용정책을 관건으로 지목했다.
핵심적 결을 지닌 문제들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필자의 생각에, 문재인 정부는 바보가 아니며 저 위험요소들을 알았다고 본다. 그렇지만 본래 위험요소라는 건 대비하고 대책을 세웠을 때 새로운 문제들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현 시점 정부에게 닥쳐온 문제도 대체로 그러하다.
한미관계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을 최대한 치켜세우면서 자신들의 정책을 반영하는 식으로 대처하려 했다.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정부 반대파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괄시를 대하는 그림을 바랐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베 일본 총리에 비해 트럼프 대통령에 잘 대처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 문제를 피하려다 만난 시진핑 문제
그러나 한중관계에서 문제가 터졌다. 일국의 외교부장관이 비록 문서화하지는 않았다지만 질의답변 형식으로 사드 추가 배치 없음,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음, 이른바 ‘삼불’을 약속했다면 충분히 고개를 조아린 것이다. 미중 갈등에 끼인 상대적 약소국의 고육지책임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외교부장관의 발언으로 과했다. 하려고 했어도 다른 이가 했어야 했다’라는 비판에도 설득력이 생긴다.
그럼에도 중국은 만족하지 못한 듯하다. 이번 방중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측에 홀대를 당했다는 것은 거의 객관적 사실 영역에 들어간다. 기자폭행 사건에서 정점을 찍었지만 그걸 빼더라도 그렇다. 양국 모두 관료제를 천년 이상 지탱한 나라들이다. 대놓고 사인을 줬는데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홀대한 쪽에서도 ‘홀대 아니다’ 말할 것이고 당한 쪽도 벙어리 냉가슴일 따름이다.
물론 이것은 중국의 잘못이다.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 실리적 차원에서도 그렇다. 한국이 친미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소 중국에게 다가가는 태도를 취했을 때 싸대기를 날리는 행위는 한국 국민들의 친미 편향을 강화할 것이다. 그쪽으로 다가가면 미국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데 중국에게도 계속 핍박을 받는다면 그걸 납득할 한국인은 없다.
이 직관적 불쾌함이 정부 지지율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인지가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위험요소가 되었다. 위험을 최대한 피하자고 미중 사이에서 이렇게 저렇게 처신하려고 했는데 새로운 위험요소를 만난 셈이다.
부동산 문제는 어떨까. 지난 번에도 지적했듯, 서울지역 부동산 폭등은 참여정부 말기 민심 이반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그걸 알기에 정부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이것이 그것대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있다. 초강수 규제책은 그것이 없었더라면 대출받아서 충분히 집을 살 수 있었을 이들에게 ‘그래서 나더러 집을 사지 말라는 거냐’라고 되묻도록 만들었다.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 논란이다. 본인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으니 더는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의미다. 이미 집을 산 중노년에게 보유세를 더 걷지는 못하면서 청년들에게만 짐을 지운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왔다. 세금은 입법부의 동의를 거쳐야 하므로 아주 타당한 지적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경제 정책은 이해 당사자를 건드리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원론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 고용정책을 말할 때 염두에 뒀던 것은 정부 초기부터 시행했던 정규직화 문제였다. 이 문제도 비슷하게 노출되었다.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 시행 방침이 대체로 정규직화이긴 한데 자회사 정규직이다. 노동계 입장에선 억지춘향이요 빛좋은 개살구다. 반대로 보수파의 불만은 여전히 있다. 실질보다 수사에 집착하는 성향이 집권 초엔 지지자들에게 시원한 느낌을 주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
지금은 이에 더해 최저임금 문제마저 추가되었다. 이는 노동계를 넘어 자영업자 일반을 건드리는 문제다. 내년의 상승폭보다는, 정말로 2020년까지 이 속도로 가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상황이다. 그 방향으로 간다면 정권 지지에서 이탈하는 이들이 상당수 발생할 것이다.
다른 위험요소는 없을까. 내년 초, 그러니까 지방선거 전에 실시되는 평창올림픽마저 위험요소로 닥쳐왔다. 평창올림픽의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지난 정권의 비선실세였다는 최순실 씨의 축재 혐의에 있다. 따라서 평창올림픽이 실패하더라도 다만 이번 정부의 위험부담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국제사회가 평창올림픽에 미온적인 것이 북핵위기와 관련이 있는 만큼 영향이 없지도 않다. 당장 그렇기에 중국에게 매달리고 있는 것인데 중국이 ‘갑질’을 시전한 것이 뼈아프다.
‘정권 무능론’ 나오기 전 가시적 실적 내야
물론 위험요소로 내재한 이 문제들이 다 터질 가능성을 본다면,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문재인 정부도 익히 아는 문제들일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일부 여론조사 전문가와 정치평론가는 현재의 정부 지지율을 그저 거품으로 보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 쪽이다. 일정 기간 이 정도 지지율을 유지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2016년 이후 근본적으로 바뀐 정치 지형도에 보수 세력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풀려다가 OMR 카드에 답안을 옮겨 적지 못해서 시험 망칠 학생’처럼 굴고 있다. 위험요소에 대처하려다가 새로운 위험요소를 만드는 지금의 상황이 그러하다. 구체적 실적이 없다면, 근시일 내에 일군의 시민들은 이러한 정황을 ‘정권 무능론’으로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촛불시민을 믿는다지만, 그중 절반 이상도 중도파와 보수파들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한윤형 데이터앤리서치 부소장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데이터앤리서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