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링크)
보수의 미래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진단에서 출발한다. 먼저 '보수에 대한 수요'가 남아있는 지다. 보수 성향 지지자가 충분하나 보수정당 지지율로 이어지고 있지 않고 있는 것뿐이라면 개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양극화 심화 등으로 잠재적 보수정당 지지층이 소멸했다면 회복이 쉽진 않다.
◇보수의 시장, 남아있나 = 보수 입장에서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는 참혹하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보수정당 지지율은 24.3%(한국당, 바른정당 지지율 합산)에 불과하다. 갤럽 조사 결과는 이 보다 낮은 19%(한국당 11%, 바른정당 8%)다. 이는 지난 대선 결과인 30.79%(홍준표 24.03%, 유승민 6.76%) 보다 6%포인트 가량 낮은 수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총선 전 40%대 초중반을 기록하던 새누리당 지지율과 비교하면 최대 15%의 지지자들이 보수정당을 이탈한 것이다. 4200만여명의 유권자 기준으로 하면 630만명이 떠난 셈이다. 권순정 리얼미터 실장은 "약 15%의 보수 지지층이 민주당으로 이동했다"며 "TK(대구경북)과 PK(부산경남)의 민주당 지지율을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PK는 차치하더라도 사실상 자유한국당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TK에서도 민주당에 밀린다"며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TK 지역민들이 민주당을 지지하게 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보수정당들이 희망을 품고 있는 잠재적 지지층, '샤이(SHY) 보수'는 얼마나 될까. 전문가들은 5%에서 7%가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보수의 잠재적 지지층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대선 홍 후보의 득표율 24.03%에서 현재의 한국당 지지율 18%를 뺀 수치다.
◇'누울 자리' 반대로 다리 뻗은 보수 = 여론 조사 전문가들은 보수의 불씨까지 꺼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샤이 보수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으로 이동한 이들(15%)의 충성도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바닥권인 것은 전략의 잘못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윤형 데이터앤리서치 부소장은 한국 보수가 크게 안보 중심의 냉전보수 20%와 경제 중심의 강남보수 20%로 구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한 부소장은 "그동안은 보수가 (냉전보수 지지에) 강남 내지는 강남을 ‘워너비’로 삼는 이들 20%를 포섭해 집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경험과 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며 강남 보수층이 의구심을 품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보수정당이 열세에서 벗어나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소위 '강남보수'라 불리는 경제적 보수를 향한 구애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그러나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경제'보다 '안보'에 초점을 둔 발언을 이어왔다. '전술핵 배치'나 '한미동맹' 강조가 좋은 예다. 이런 전략이 안보를 중시하는 냉전보수를 잡아두는 데는 유효했을지 모르나 경제를 중시하는 보수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불충분했다는 얘기다.
내년도 예산안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한국당의 전략은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당은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반대했으나 소득세 인상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주요 쟁점 8가지 중 원안 그대로 통과한 쟁점은 소득세가 유일하다. '강남보수' 입장에서는 보수정당인 한국당이 '기업'의 편이지 '자신들'의 편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
감정적 문제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전문가는 "한국에 보수라는 말을 쓰기는 어렵다"며 "엄밀히 말해 보수세력이 아닌 '퇴행세력'"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도 "안보보수, 경제보수라고 나누기 보다는 소위 말하는 '수구'냐 '개혁'이냐의 문제"라고 했다. 퇴행이나 수구, 적폐라는 험한 말이 내포하는 의미를 정치적으로 풀어본다면 '민주주의 체제의 파트너가 아니다'라는 말로 대변될 수 있다. 탄핵 국면에서 제기됐던 '상식'이라는 구호도 이같은 맥락이다.
강남보수가 갖고 있는 사고방식을 현재의 보수정당이 만족시키지 못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보수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합리성에 기반하는 측면도 있다.
반면 현재 보수정당은 대외적으로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박근혜 정권의 전근대적 행태와 완전히 단절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적 보수를 위한 행보를 보이더라도 지지로 이어지기 어렵다.
한 부소장은 "도식적으로 말해 한국당은 TK(대구경북)가 아니라 강남을 수복해야 하는 건데 두 당(한국당, 바른정당) 모두 일단 TK에서 보수의 맏형임을 확인하겠다는 식의 안이한 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데이터앤리서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